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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상인-중국상인(화교상인)-오오사까상인: 3국 국민성 비교 경제

 

모든 국가는 시장에서 출발한 상업자본에서 경제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부를 축적하며 산업자본화 되가는 과정을 거쳐왔다 중세유럽에서도 봉건영주에 예속되 있던 상업자본이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산업자본화 되가면서 급속한 부의 축적으로 봉건제도의 점진적인 몰락을 가져와 초기 서구 민주주의에 큰영향을 미쳤다  유럽의 네델란드(화란상인)상인과 유대상인은 아직도 세계적으로 그들의 상술과 신용을 인정받고 있다.

 

 우리나라는 고려왕국 건국 이전부터  개성지방(옛지명;송도) 에서 형성된 개성상인은(송상:송방) 지금도 남대문.동대문.청개천을 중심으로한 국내의 대규모 상권에서 또는 제조업을 경영하는 기업가로서 그들의 철저한 단결과 근면.절약하는 생활정신과 철저한 개성상인 정신으로 무장된 상인으로서의 상도의와 상인이 생명인 신용을 목숨과 같이 중요하게 생각하고 철저히 지켜오고 있다.

 

지난번 글에서는 전세계 화교상인(화상)의 형성과정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했다 이번글에서는 국내의 화교상인들의 형성과 쇠퇴에 대해서 설명하고 일본의 유명한 오오사까 상인에 대해서 각국의 국민성의 비교와 함께 이야기 하고자 한다.

 

상기에서 애기 헀드시 우리나라의 개성상인은 그들의 단결과 근검절약하는 생활정신은 현재를 사는 우리의 젊은 세대가 마음속 깊이 본받아야 할점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우리나라의 소위 알부자라는 현금재벌은 거의 개성상인 이라고 봐도 거의 틀리지 않을 것이다 IMF 외환위기 당시 내노라하는 굴지의 재벌들이 개성상인들 알부자들(현금재벌)한테 서로 현금을 융통을 하려고 줄을 섰다고 하는 애기는 유명한 애기고 그들이 이름만 재벌인 국내재벌들보다 숨은 재벌이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한 일이다.

 

대규모 시장에서 장사를 해서 남보다 월등이 성공하는 사람들도 개성상인 이다 그들의 단결은 시장내에서도 다들 인정하고 있고 근검절약하는 생활은 유명하다 일례로 동화은행은 처음 설립할 당시 월남한 이북 5도민들과 그자녀들 에게만 주식을 공모를 했다 지금은 IMF 외환위기때 구조조정 대상이 되어 타은행과 합병이 됬지만(합병 당시에 재무건전성.주주구성 어떤면으로 봐도 구조조정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하는 애가가 많았음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이면에는 정치적인고려가 있었다고도함).

 

동화은행이 주식 공모를 발표하자 국내의 숨은 알부자들(현금재벌) 과 이북 5도민 출신들이 일치 단결하여 주식에 공모하여 며칠만에 공모물량을 초과하는 공모신청이 들어와  추가로 공모할 정도 였다 그리고 개점을 하자마자 개성상인을 위시하여 이북 출신 기업인등 불이익을 감수하며  기존 거래은행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동화은행으로 거래를 옮겨  신설은행중 최고의 예금고를 기록헀다.그들의 단결력을 보여주는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상거래에서도 철저히 단결을 하고 있다.

 

장사와 개인적인일은 철저히 구분을 한다 같은 시장에서  동업종의 장사를 할때  형재간에 가정사로 서로 불화가 있어 조상을 모시는 제사때 외에는 상면하고 전화도 하지 않더라도 다른 거래처와 비교해 가격등 조건이 유리할 때에는 서슴없이 거래를 한다 형제가 아니라 상인으로서 서로를 대하는 것이다.

 

 돈이 많아 재벌들 처럼 고급 외재차를 살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경우를 재외 하고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개성상인들의 생활 정신이다 필요없는 회식도 가끔 직원들 외에는 거의 않한다 회비로 돼지고기를 몇근 사가지고 집에서 가족들과 먹으면 푸짐하게 먹는데 왜 궂이 돈을 낭비 하냐는 것이 개성상인들의 일상의 생활철학이다 백원짜리 동전을 아끼고 절약 해야만 억대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고 백원을 낭비 하는 사람은 평생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정신이다 종이 한장 낭비 안하고 구두가 낡어서 밑창을 갈아 가면서 십년이상을 신고다니고..그들의 근검절약은 그말고도 여러 일화가 많이 있다.  

 

그렇게 한푼도 아끼고 절약하며 축척한 부인데 말년에 장학기금이나 사회에 거금을 서슴없이 미련을 갖지않고 기부하는 사람들도 또한 그들이다 한마디로 돈을 쓸줄 아는 상인이고 속담에 개같이 벌어서 정승 같이 쓴다는 말이 꼭 그들에게 맞는 애기 일것이다. 우리나라가 50-70년대 저개발 국가로서 끼니를 제대로 못먹을때 부모들이 한푼을 아껴가며 어떻게 근검절약하여 돈을 벌었는지  배고프지 않고 비교적 유복하게 살아온 현재의 젊은이들은 깊이 마음 새겨 배워야 할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개성상인들은 중국과의 무역과 개성인삼의 독점판매로 엄청난 부를 축적 하였다 조선말기와 일제 식민지하에 일본의 신흥 상인자본과 산업자본이 국내에 들어와 상권과 세력을 확장 하자 개성상인의 상권과 세력은 많이 약화 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단결력과 상도의와 신용은 일본 상인들도 함부로 무시 하지 못헀다.

 

일본에서도 우리나라의 개성상인 처럼 유명한 오오사까 상인들도 개상인의 주요 사업영역인 인삼.비단등 주요상권을 총독부의 권력과 온갖 수단을 동원해 무너 뜨릴려고 노력 했으나 그들도 개성상인들이 개인의 사욕을 위해 서로 배신을 안하고 철저히 단결하여 신용을 목숨과 같이 하며 상권을 지켜낸 일은 그들도 감명을 받고 포기한 경우도 여러번 있었고 나중에는 개성상인들을 존경 하게되어 개성상인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할 정도 였다.

 

그들의 단결은 송방을 위시한 그당시 무시못할 보부상들의 단결력과 서로의 의리로도 잘 보여준다.부정한 부는 축적하지 않고 상도의를 어기고 부정하게 부를 축적하며 배신을 하면 단결하여 철저하게 응징을 하여 도퇴 시킨다.현재의 강화인삼은 개성상인의 후예들이 강화로 인삼재배를 옮긴 것이다 그들의 철저한 신용에 대한 정신은 거래처에서 은행에 거래대금을 송금을 헀어도 그돈을 인출해서 자기 주머니에 있어야 자기돈으로 인정하고 다른 거래처에 지불 약속을 할 정도이다 은행이 전산망이 다운되거나 의외의 돌발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둔것이다 얼마나 그들이 상거래의 신용에 철저한가를 보여주는 일례일 것이다.

 

개성상인의 신용은 국내상인은 물론  일본 상인들도 은행 이상으로 믿을 정도 였다  고려시대 부터 거액의 상거래에 통용되던 현재로 말하면 약속어음으로 개성상인이 발행하는(한지로 발행) 약속어음은 전국에 은행의 자기앞수표나 마찬 가지로 통용이 되었다 지금은 폐업을 헀지만 내가 알기로는 80년대 초까지 지금의 소공동 롯데 백화점 건너편 광교방향으로 인삼을 전국에 거래 하는 개성상회가 있었다.

 

그당시 숨은 현금재벌로 70년대 오일쇼크(2차 오일파동 이라함) 당시 정부에서 기업들이 사채자금 압박으로 도산 할것을 우려해 그당시 파격적인 사채동결을 긴급법으로 공표해 사채업자들이 상당히 재정적으로 타격을 받았으나 개성상회의 철저한 신용으로 어려운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그이후에도 계속 개성상회에서 한지로 발행하는 어음은 은행 자기앞수표와 같은 신용으로 거래처에서 유통이될 정도였다.

 

얼마나 목숨과도 같은 신용인가! 개성상인들은 전통적으로 도제를 통해 어릴때 부터 상인정신으로 무장을 시키고 그 혹독한 수련과정에서 자연히 근검.절약. 단결과 상도의와 철저한 신용이 생활화 되고 투철한 개성상인의 철학이 형성되고 생활화 되는 것이다 그생활에 적응을 하고 주인이 개성상인의 자격이 되었다고 인정을 할때는 간판물림이라고 하는 관례로 일부의 상권과 함께 독립을 시키는 것이다 한마디로 개성상인의 송방은 한국판 마스시다 정경숙이나(일본 나쇼날 전기의(송하전기) 창업자 마스시다 고노스께의 이름을 딴 학교) 마찬가지 역활을 한 것이다.

 

위와 같이 우리나라의 개성상인의 정신과 생활철학은 어느나라 상인에 못지않게 훌융하고 개개인의 자질도 우수한  우리나라의  유무형의 소중한 자산인 것이다 그런데 일본과 비교해서 우리나라는 중소기업이 산업구조의 중심적인 역활을 못하고 거의 대기업의 하청구조나 아니면 기업을 영위하는 과정에서 거의 대기업에 예속 되어있는 구조이다.

 

일본이 세계에서 유일한 핵폭탄 피해국으로 2차대전의 패전국으로서 국가의 산업시설과 인푸라의 폐허 위에 오늘날과 같은 세계2위의 경제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것은 미국에서 선진화된  교육을 받은 미국의 주요한 대기업에 근무하던 유능한 인재들이 미국의 월등한 환경과 조건을 마다하고 자진해서 폐허가된 고국으로 돌아와 국가부흥에 초석이되고. 한국.베트남전등 여러요인이 있겠지만.

 

그중에 간과할 수 없는 것은 상인자본으로 출발하여 단계적으로 경제발전의 토대가되는 제조업으로 국가의정책과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여 발전을 하여 산업구조의 중심이 되어 장기적 경제발전의 초석이 된것이다  거기에 비교에 우리나라는 해방이후 몇년후에 6.25전란을 겪고 전쟁의 같은 폐허속에서 우리나라는 경제발전이 일본보다 뒤처쳐온 이유는 정치.경제.사회적인 여러요인이 있겠지만 그중 한요인은 상업자본이 정상적인 발전단계를 못거치고 그에따른 산업의 중심인 중소제조업의 낙후되고 후진적인 발달 과정도 한요인이라 생각한다.

 

그이유는 60-70년대 우리나라는 신생독립국으로서  전쟁의 페허속에서 국민소득이 지금의 버마 수준인 약300$ 정도에서 경제발전을 추구했다 그당시 지금 나이 50-60 대는 초등학교때 미국에서 들어오는 원조물자인 딱딱한 옥수수빵 고체로된  딱딱한 우유로 허기진 배를 체웠던 기억을 할 것이다.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에 동내마다 거지들이 진을치고 아침저녁으로 동냥을 다니던 비참한 경제상황 이었던 것이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그애기를 하면 어느 아프리카 후진국을 애기를 하냐고 믿지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당시 엄연한 우리나라의 냉혹한 경제현실 이었던 것이다 그당시 독재체제와 신생국으로서의 정치.경제.사회제도등 여러문제점이 있었음에도 지금 현재의 우리나라의 비약적인 경제발전의 토대를 구축헀다고 다들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 축적된 산업자본이 부족해 미국의 압력으로 일본과 굴욕적인 한일회담의 보상으로 장기차관과 보상금으로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의 자본이되고 미국의 원조와 독일에 탄광의 광부.간호원등 인력수출과 독일의 차관으로 어려운 환경속에서1.2차 경제개발을 이룩해 온것이다.그과정에서 상업자본의 산업자본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IMF 외환위기당시 도산한 30대 재벌구룹중 몇몇 기업만 제외하고 거의 60-70년대의 정경유착을 통한 차관재벌 이었던 것이다.상업자본의 산업화자본으로의 전환이 확실한 기반 조성되지 않고 정경유착으로 거대한 산업자본인 재벌구룹이 하루아침에 모래위에 성처럼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당연한 결과인 것이다

 

상업자본의 산업자본으로의 발전과정이 아니라 그당시 정치체제의 환경으로 정치세력과 경제세력간의 유착으로 그소중한 차관을 들여와 정치적이해 관계로 저리로(그당시의 후진국에 공여하는 저금리 차관) 기업들에게 배분하는 구조 였다 그자금으로 일부는 독과점체제를 형성해 경제산업구조를 심히 외곡시키고  중소기업과 경제발전을 저해 했던것이다.

 

그과정에서 자연히 대기업의 중소기업에 대한 수직적인 수탈 구조가 형성이되어 지금은 어느정도개선이 됬지만 아직도 그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일례로 정부에서 저리 차관자금을 배정받고 유일하게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제도인 어음제도로 중소기업에게는 3개월 심한 경우에는 6개월 기간의 어음을 거래대금으로 지급받으면 중소기업은 현금을 융통하기 위해서는 고금리로 어음을 은행이던 사채업자한테 할인을 해서 현금을 융통해야 하는 구조인 것이다.

 

그러한 현실인데 어떻게 중소기업 자금의 여유가 있어 신제품의 연구.개발에 투자하여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출 여유가 있겠는가 사실은 회사의 경영으로 이익이나 사내에 유보한 자금이 아니라 국가의 자금으로 중소기업 대금은 제대로 지불을 하지않고 어음으로 지급하고 그여유자금으로 부동산 투자나 무분별한 문어발식 기업확장으로 동물적인 과도한 탐욕의 결과로 결국은 IMF 의 외환위기를 맞아 줄줄이 도산한 것이다  대기업의 중소기업의 수탈구조를 제도적으로 해소되지 않으면 선진국으로 진입단계에 있는 우리나라와 같이 잠제경제성장력이 점점 정체되는 경제.산업구조에서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경제발전은 분명히 한계가 있는 것이다.

 

그당시 시골에서 먹고살기 힘들어 무작정 상경을해 구로공단과 같이 큰공단외에 영등포. 남대문.동대문.청계천 피복공장등의 공장에서 지독한 저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과 숙식환경에서  지금은 호칭을 예우를 해서 생산직이라고 부르지만 그당시에는 공돌이.공순이라고 불리며 수모를 당하며(국민학교도 못나오고 고작나와야 중학교졸업.중퇴 정도였다) 100원 정도도 않되는 공나물국에 김치 한가지에 식사를 때우는데 족하며 오갈때 없이 그래도 서울에서 돈을벌어 성공해 보겠다고 우리나라의 어린 청소년들이 었다.

 

그들의 피와 땀의 대가가 오늘날 우리기 누리는 경제발전의 풍요를 누리는 원동력 이있던 것이다 지금은 노동조합의 운동으로 근로자의 조건과 환경이 많이 개선 되었지만(일부는 귀족노조라는 비난도 받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지난날의 고생한 선배근로자들을 생각해 깊이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부 대기업에 한하고 아직도 산업구조와 노동구조에 있어 중소기업은 열악한 환경에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관계에서도 대금지급조건이나 연구.개발지원.인력양성협조등 여러가지 상생관계로 수직적이 아니라 수평적인 협력관계로의 방향전환을 하고 있는 것은 다행스럽게 생각하나 아직도 갈길이 먼것이다 정부와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제도적으로 문제점을 시정하고 보완하면서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국제적인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장기적으로 국가의 지속적인 경제발전과 국가와 민족에 애국하는 일임을 깊이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나라를 이끌어갈 청소년들은 부모들의 60-70년대 환경을 생각해보고 우리나라의 저축율은 아시아에서 제일 낮고 가계금융부채는 아시아에서 제일 높은 위험수위를 넘은 상태인데 개성상인의 생활철학과 같이 근검절약을 본받아야 되지 않을까 감히 다시한번 생각해본다.현재 우리나라 경제상황은 베짱이가 아니라 개미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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